구병모작가 소개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문장력과 매끄러운 전개, 흡인력 있는 줄거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늘의 작가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존 청소년소설의 틀을 뒤흔드는, 현실로부터의 과감한 탈주를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성장소설이라는 도식을 흔들며,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을 지배하는 섬뜩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도 이야기가 무겁게 얼어붙지 않도록 탄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촘촘한 문장 역시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집에서 뛰쳐나온 소년이 우연히 몸을 피한 빵집에서 겪게 되는 온갖 사건들은 판타지인 동시에 절망적인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며, 일반문학과 장르소설의 묘미를 적확한 비율로 반죽한 이 작품만의 특별한 미감은 색다른 이야기에 목말랐던 독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또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법사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비틀린 욕망은 무시무시하고,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헨젤과 그레텔 같은 ‘잔혹동화’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이들의 문법을 절묘하게 전복시킨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어 화제가 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한 인터넷 웹진에서 '곤충도감'이라는 작품을 연재했다. 이름을 가리고 봐도 구병모 작가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용서에 대한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2015년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오늘의 작가상과 황순원신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파과, 아가미, 한 스푼의 시간이 있다.
출판사 리뷰
소설가 구병모의 대표작 아가미가 돌아왔다. 수많은 마니아 독자들 사이에서 재출간 요구가 속출했던 바로 그 작품이 예쁘게 새옷을 갈아입고 세상에 새로이 선을 보인다.
아가미는 죽음의 문턱에서 아가미를 갖게 된 소년의 슬픈 운명을 그려낸 아름다운 잔혹동화이다. 잇따른 불행으로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한 남자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호수로 몸을 던진다. 남자는 끝내 목숨을 잃지만, 생을 향한 본능적인 의지로 아가미를 갖게 된 아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다. 호숫가에서 살고 있는 노인과 그의 손자 강하에게 발견된 아이는 ‘곤’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들과 함께 살게 된다. 아가미로 숨을 쉬고 눈부신 비늘을 반짝이며 깊고 푸른 호수 속을 헤엄치는 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소년은 물속에서만큼은 한없는 자유를 느낀다. 곤에게 새로운 이름과 삶을 건네준 강하, 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해류. 삶이라는 저주받은 물속에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간절히 숨 쉬고 싶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가 신비롭고도 아름답게 펼쳐진다.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생을 향한 강렬한 몸부림, 눈부시게 살아 숨 쉬는 존재들에게 바치는 헌사
구병모 작가는 한국 문학의 지형을 확장했다는 평가와 함께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위저드 베이커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문학에서 유례없던 노년의 여성 킬러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여성 서사를 써내려간 『파과』, 재난 같은 삶 속에서 서로를 외면하는 우리의 비정한 초상을 집요하게 그려내어 오늘의 작가상, 황순원신진문학상을 거머쥔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로봇의 눈에 비친 인간의 희로애락과 삶의 비밀을 따뜻하게 그려낸 『한 스푼의 시간』 등 독특한 시도를 거듭하며 청소년문학과 본격문학,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경계 없이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도발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상상력,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들, 집요하리만치 탄탄하고 촘촘한 문장, 따뜻하게 위로를 건네며 치유해주는 서사로 한국 문학의 새로운 축을 굳건히 다져왔다.
명실상부 구병모 작가의 대표작인 아가미는 놀라운 흡인력과 밀도 높은 서사, 독특한 상상력과 한층 더 깊어진 주제의식으로 절망적인 현실을 환상적이고 강렬하게 묘사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을 향한 강렬한 몸부림으로 아가미를 갖게 된 남자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비밀스러우면서도 가슴 저린 운명이 펼쳐진다. 곤에게 새로운 이름과 삶을 건네준 강하는 곤이 언젠가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질투로 그를 염려하면서도 겉으로는 거칠게 대한다. 아들 강하를 버리고 떠난 뒤 마약에 찌들어 십수 년 만에 돌아온 이녕은 곤에게서 그리움과 위로를 느낀다. 삶에 지칠 대로 지친 해류는 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뒤, 신비감과 경이로움에 이끌려 그의 비밀을 뒤쫓는다.
비록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상처받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한때 자신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던, 눈부시게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이었음을. 그 상처가 결국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아가미가 되어, 바닥없는 물일지라도, 생을 향한 강렬한 몸부림으로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가는 존재들임을. 아가미는 그렇게 우리의 지친 일상에 후욱, 숨을 불어넣어주는 매혹적인 소설이다.
본문 소개
페이지 22쪽 :자, 저는 그것이 사람이었든 물고기였든 혹은 네시였어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그가 저한테 한 번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저는 집에 가서 엄마를 돌보며 필사적으로 돈을 벌고 재계약에 성공해야 한다는 사실 뿐이에요. 다음에는 정말 이런 일이 있으려야 있을 수도 없겠지만, 또다시 물에 빠진다면 인어 왕자를 두 번 만나는 행운이란 없을 테니 열심히 두 팔을 휘저어 나갈 거예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 없는 물이기도 하고
페이지 69쪽: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살랑이는 물풀에 걸려 가동거리는 자디잔 은빛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가 얼마나 가냘픈지, 바위 뒤 그늘진 곳에 누군가가 산란해 놓은 구슬 같은 젖빛 알 무더기는 얼마나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굴절된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지, 물고기들의 비늘은 바라보는 각도와 방향에 따라 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또 어떤 물고기는 만져보면 얼마나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점착성마저 있어서 손대는 순간 그대로 빨려 들어 하나가 될 것만 같은지, 무엇보다도 말이 통하지 않는 물고기들과 자신이 서로의 살 한번 닿기만 하면 얼마나 오묘한 직감으로 영력 내지는 신앙에 가까운 몸짓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를 하려면 해류를 강 속으로 끌고 들어가야만 가능했다.
페이지 97쪽 :저 빌어먹을 물고기, 물고기, 물고기새끼! 곤의 생사 문제는 사실 걱정할 필요 없고 물에서 나온 뒤 어른들이 그의 특별한 폐활량을 미심쩍어하며 무언가를 캐물어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무시하면 그만이겠지만 정작 강하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결코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호수의 바닥, 그 깊이였다. 자신이 가지 못하는 곳에 곤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거리감과, 언젠가는 곤이 정말로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다른 물고기 떼들 사이로 깊이깊이 헤엄쳐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예감이 흔들고 지나간 미로의 바닥에는 길을 잃은 분노와 질투라는 이름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수없이 겹이 덧씌워지는, 아직 발생지 않은 장면들이 상상의 틀에서 벗어나 현실로 방생되고 있었다.
페이지 152쪽 : “예쁘다.”
그러자 곤은 한 마리의 생선이 되어 도마 위에서 토막 나지 않도록, 자신의 살과 내장에서 간유를 짜내고 그 찌꺼기가 엇박과 어분으로 분리되어 어느 짐승의 입에 들어가지 않도록, 어딜 가든 감추는 데 급급해온 자신의 몸이 누구도 들려준 적 없던 그 말 한마디로 구원받은 것만 같았다.